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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율, 할비랑 그림책 읽자!(출간 전 연재)

[출간 전 연재 04] 판타지, 이야기의 힘 - 크리스 반 알스버그, <폴라 익스프레스>

by 도서출판 상상의힘 2024. 11. 27.

판타지, 이야기의 힘 크리스 반 알스버그, 폴라 익스프레스

 

1.

 

아기들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은 당연 의식주와 돌봄이다. 태어나자마자 비척거리지만 네 발로 일어서는 소나 기린과 달리 사람의 아기들은 양육이라 일컫는 돌봄이 아주 오래 지속된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는 여덟 살, 아홉 살. 넉넉잡고 열 살까지는 챙겨 줘야만 한다. 사내아이들은 조금 더 갈지도 모르겠다. 열 살이 아니라 서른, 마흔이 되고서도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사람 수컷들이 부지기수니.

의식주와 돌봄이 성장의 필요조건이라 한다면, 충분조건은? 그 무언가가 있음으로 해서 성장이 비로소 제대로 완성된다면, 그 무엇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저것 손꼽을 수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놀이다. 놀이야말로 성장을 촉진하는 트리거, 그러니까 방아쇠다.

<동물의 왕국>만 봐도 그렇다. 사자든 원숭이든, 미어캣이든 배를 채우고 나면 어김없이 지들끼리 펄쩍펄쩍 뛰고 쫓고 어울려 논다. 놀이야말로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놀이는 그 자체가 학습이다. 누가 따로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놀이는 저마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 운동인 셈이다. 누구나, 모두가 놀이를 통해 미리 앞질러 세상살이를 경험하는 것이다.

율이는 첫돌에 커다란 플라스틱 집을 선물 받았다. 걸핏하면 식탁 밑으로, 커튼 뒤로 기어들어가 까꿍 놀이를 하는 걸 보다 못해서였다. 엄마 아빠는 집이 없어, 이곳저곳 전전하는데 아기는 진즉 자가를 마련한 것이다. 온갖 인형들이 그 집에서 함께 살았다. 아기는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문을 닫고 초인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딩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울리면,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율이의 두 돌을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가 준비한 선물은 주방 놀이 세트였다. 싱크대와 냉장고, 식기세척기가 딸린. 그곳에 서서 아이는 저녁을 준비하고, 과일을 내오고,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이 주방 놀이 세트는 신기하게도 수도꼭지를 들어 올리면 어디선가 물소리가 났다. 아기가 더러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다른 일에 마음을 뺏기기라도 하면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며, ‘율아, 우리나라는 강이 아주 많지만 그래도 물 부족 국가란다라고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곤 했다.

집과 주방 가구 세트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 놀이 기구들은 당연 모두 가짜다. 그러니 놀이들은 상상 속 놀이일 따름이다. 그런 척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싸우는 척하고, 쫓고 쫓기는 척하듯. 집에서 손님을 맞는 척, 주방에서 살림을 하는 척하는 것이다. 요즘 아기는 유아차를 타고 가기라도 하면, 덮개를 씌워 달라고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율아, 그럼 발은 어떡해?’라고 나는 묻지 않는다. 냉큼 덮개를 내려주고, ‘율이가 어디 갔지? 어디 갔지?’ 찾는 척한다. 까꿍 놀이에서 다소 진화된 숨바꼭질 놀이인 셈이다. 그리고 ‘~하는 척한다는 것이야말로 상상놀이의 핵심이다.

요즘 율이는 카페 놀이에 흠뻑 빠져 있다. 뭔가를 계산대로 만들고는 번갈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 음료를 주문하는 손님이 되곤 한다. 우리 집에서는 운동기구인 실내자전거가 계산대다. 묘하게도 이 실내자전거는 단추를 누르면 하는 소리가 난다. 이 계산대에 서서 음료를 주문하고, 카드를 받고, 계산을 한다. 이 카페 주인은 더러 돈만 받고 커피를 내주지 않는다거나, 팥빙수는 감기에 걸리니 안 된다며 손님에게 다른 메뉴를 강요하기도 한다.

 

2.

그림책을 포함하여 모든 문학작품들은 사실 상상놀이의 한 방식이다. 문학은 모든 작품이 저마다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인 척하는것이다. 그러니 다른 말로 픽션, 허구라는 장르의 이름을 붙여두기도 한다. 허구의 본뜻은 있을 법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허구는 그저 사실인 척하는거짓말을 넘어, 사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다. 이 문장에는 거짓말보다 진실에 더 또렷한 방점이 있다.

그림책에서 이 거짓말, 진실의 세계를 가장 힘껏 밀어가고 있는 작품이 판타지 그림책이다. 여기 아름다운 판타지 그림책이 우리 앞에 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폴라 익스프레스>. ‘북극 행 열차라 번역하지 않고 왜 영어를 그대로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도 폴라 익스프렉스가 북극으로 가는 고속열차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열차의 이름, 곧 고유명사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매해 미국 내에서 출간된 가장 탁월한 그림책에 주는 상인 칼데콧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그림책 작가다. 한 번도 받기 어려운데, 두 번씩이나. 게다가 알스버그는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칼데콧 우수상을 진작 수상하기도 했으니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칼데콧 상이 미국에서 출간된 책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사실이다. 칼데콧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해에 나온 세상에서, 어쩌면 미국 내에서 가장 멋진 그림책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미국인들은 트럼프도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그러나 1985년 출간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폴라 익스프레스>는 칼데콧 상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출간된 그림책들 가운데에서도 손꼽을 만한 작품임은 물론이다.

딱 눈길이 닿기만 해도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실사에 가까운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 오일 파스텔로 그린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돋보이며, 실내든 실외든 장면 자체의 현실성이 뛰어나 애초 판타지인 그림책의 이야기에 실감을 부여한다. 표지에는 김을 피워 올리는 증기기관차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차는 어서 달려 나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책을 펼치는 오른쪽 상단을 향하고 있다. 실제 이 기차는 미시건 호수 인근과 캐나다까지 운행하던 증기기관차 페레 마르퀘테 1225Pere Marquette 1225란다. 알스버그는 어린 시절 이 기차의 모형을 가지고 놀았으며 1225란 고유번호로부터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연결시켜야겠다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3.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이 그림책의 압권은 이야기다. 페레 마르퀘테 1225에서 따온 기차와 크리스마스와 산타, 그리고 작은 방울이 빚어내는 이야기.

교육적 맥락에서 이야기를 연구해 온 이론가 중 애플비란 이가 있다. 이 학자는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야기 속 일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곧 아이들의 서사능력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저 강 건너 숲속에 가면 산타클로스가 있으니 우리 만나러 갈까라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반응이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서너 살 박이 아이들은 한결같이 무서워요”, “가기 싫어요”,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등등의 반응이었다. 우리 율이도 여름 휴가 차 펜션을 갔을 때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는 다락방을 기어코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어두컴컴해서 도깨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서는 기꺼이 모험을 포기했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데 아이들은 7살이 넘어서자 대부분 에이, 아저씨 뻥이잖아요.”라고 단박에 거절했다.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의 세계일 뿐임을 명확하게 자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어린이들이 산타를 언제까지 믿고 있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다. 더 늦게까지 믿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이른 시기에 산타는 없지만 있다고 믿는 척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도 있으니.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은 정확히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서 있다. ‘에이, 뻥이잖아라고 하면서도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장치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이야기는 먼저 잠자리에 누워 사슴이 끄는 썰매의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들어야겠다는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친구들은 이미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고 하지만 아이는 친구의 말을 믿고 싶지 않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 썰매의 방울소리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딸랑거리는 방울소리 대신 기차가 내뿜는 증기와 철커덕거리는 쇳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창밖을 보니 증기기관차가 떡 하니 집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리는 눈발을 속에 연신 시계를 보며 창 너머 자신을 보고 있는 차장의 눈길에 이끌려 아이는 몰래 집밖을 나와 차장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당연히 북극으로 가는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설명을 듣는다. 아이는 차장의 손에 이끌려 기차에 오르고, 객석에는 아이들로 이미 시끌벅적하다. 모두들 잠옷차림으로 캐롤을 부르고 사탕을 먹고 코코아를 마신다. 차창으로는 도시가, 시골 마을이 보이더니 어느 새 빛이 없는 어두운 숲, 드높은 산맥, 얼어붙은 빙하가 보이는 평원을 달리고, 마침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으로 가득 찬 도시, 북극에 도착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올해 처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아이가 선정된다는 것이다. 기차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가자 정말 은방울을 딸랑이며 대기하고 있는 썰매들이, 사슴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썰매를 타고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의 앞에 와 내리고, 소년에게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묻는다. 아이는 커다란 자루에 있는 것이 아닌, 썰매에 매달린 은방울을 원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환호 속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다. 산타클로스는 썰매를 타고 떠나고, 아이는 다시 폴라 익스프레스를 탄다. 그런데 아이들이 은방울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아뿔사! 주머니에 난 구멍으로 은방울을 흘리고 말았음을 알게 된다. 아이는 상심한다. 기차는 집 앞에 아이를 내려주고, 차장은 힘껏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떠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여동생 사라와 함께 아이는 선물 꾸러미를 푼다. 이러저러한 꾸러미를 모두 풀어 헤치지만 트리 뒤에 수줍게 숨어 있는 듯한 작은 상자 하나를 사라가 발견한다. 아이의 이름이 쓰여 있는 상장 속에는 바로, 은방울이! 짧은 메모와 함께. ‘썰매에 이게 떨어져 있더구나. 주머니를 꼭 꿰매도록 하렴. 산타가.’ 아이는 방울을 흔들며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듯한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데, 엄마와 아빠는 어쩌나, 방울이 망가졌네. 소리가 안 나잖아.’라고 말한다. 그 소리를 또래 친구들은, 여동생 사라는 들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사라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비록 어른이 되었지만, 산타와 크리스마스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아이에게는 여전히 방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4.

이야기 속에 현실과 판타지는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둘을 연결해 주는 매개물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은방울과 은방울의 소리다. 은방울은 판타지 세계에서 받은 선물이지만, 현실 속에 여전히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는 연결된다. 실감을 더하는 것이다.

율이의 상상 세계에도 매개물은 있다. 갖게 된 커다란 플라스틱 집에는 초인종이 있다. 판타지 세계임에도 현실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초인종이. 그 벨을 누르면 플라스틱 집은 진짜 집이 된다. 주방 놀이에도 매개물은 있다. 수돗물 소리. 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현실성을 불러 일으킨다. 카페 놀이에서도 계산기가 작동하는 소리. 소리와 함께 놀이는 놀이로 그치지 않고, 생활의 일부가 된다. 플라스틱 집이, 주방 놀이 세트, 카페 놀이를 위한 실내 자전거가 아니라도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놀게 해야 할 일이다. 그러자면 매개물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예컨대 놀이터의 입구에는 문이 있어야 한다. 그 문을 넘어서야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더러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폴라 익스프레스를 다시 펼쳐 읽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쉽다. 영어 원서에 책의 모든 그림에는 프레임이 있다. 마치 액자처럼, 그림과 글은 모두 흰 테두리의 외곽선 안에 갇혀 있다. 표지에 있는 그림들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번역서에서는 이 프레임을 지워버렸다. 프레임이 있는 것이 편집자들에게는 거추장스러웠거나, 그림의 장쾌한 아름다움을 제한하는 것처럼 느꼈나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림책에서 프레임은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나누는 경계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레임 속에 갇힌 세계는 상상 속 세계인 것이다. 이를 결코 자의적으로 지움으로써, 현실과의 경계도 지워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그림책의 프레임 사용은 또 다른 예술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뒷표지의 그림 속 기차를 타려는 아이가 본문 속의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배경 속 다른 아이라면 어땠을까? 그 이듬해의 크리스마스이브이거나 다른 장소, 다른 아이의 크리스마스이브였으면…….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트리를 만들고 장식을 달며, 연례행사인 듯 폴라 익스프레스를 다시 펼쳐 읽는다. 크리스마스의 정취에 흠뻑 젖어드는 것이다. 읽기를 마친 후 나는 묻는다. “율아, 우리도 북극에 한번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