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뒤란 출간도서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김찬곤 글

by 도서출판 상상의힘 2022. 5. 18.

 

* 세계 신석기 미술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초가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에 담겨 있다
김찬곤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는 세계 신석기 미술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한반도 신석기인을 비롯하여 세계 신석기인은 그릇에 자신의 세계관을 새겼다. 그들은 이 세상 만물의 기원 물(水), 이 물의 기원 비(雨), 이 비의 기원 구름(云)을 새겼는데, 암사동 신석기인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바로 구름의 기원 ‘하늘 속 물’과 이 하늘 속 물이 나오는 통로(구멍) ‘천문(天門)’까지 새긴 것이다. 이 세계관은 ‘기원의 기원’까지 담았다는 점에서 당시 세계 신석기 세계관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한 세계관이었다.
세계 신석기인은 이 세상 만물의 기원이 비(雨, 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비는 구름(云)에서 내린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구름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제는 화창하게 맑았는데 오늘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면 두려웠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들은 물이 수증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거나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났을 때 구름이 생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 세계관 속에서 이 구름의 근원을 어떻게든 풀어야만 했다. 대체로 세계 신석기인들은 구름을 만들고 주관하는 신(God)을 상정한다. 그에 견주어 암사동 신석기인들은 하늘 속 물이 스스로 구멍(통로)을 통해 구름으로 내려온다고 보았다. 김찬곤은 이것을 터키 괴베클리 테페의 핸드백(stone bag) 분석을 통해 서아시와 동북아시아 신석기 세계관의 차이를 드러낸다(9장 괴베클리 테페의 클라우드백에서 아시리아의 워터백까지).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반도 신석기 미술에서 종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는 ‘기원의 기원’까지 담고 있는 세계관에는 신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고 한다.

* 빗살무늬토기의 디자인과 패턴을 밝히다
빗살무늬토기 디자인과 패턴을 본격으로 풀어내는 장은 3장이다. 3장에서는 구름과 하늘 속의 경계인 ‘파란 하늘’ 패턴과 하늘 너머 ‘하늘 속 물’ 패턴을 다룬다. 4·5·9장은 하늘 속 물이 어떻게 이 세상에 구름(삼각형 구름과 반타원·반원형 구름)으로 나오는지 밝힌다. 4장에서는 중국 한자 위상(上)과 아래하(下)에 담긴 세계관을 풀었다. 이 두 글자의 기원을 찾는 일은 중국 신석기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고, 더 나아가 중국 한자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5장은 암사동 신석기인의 독특한 세계관 천문(天門)을 중국과 세계 여러 신석기 미술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낸다. 9장은 세계 신석기 미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터기 괴베클리 테페 신석기 세계관을 밝힌 장이다. 우리는 이 장을 읽으면서 서아시아 신석기인이 구름의 기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암사동 신석기인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신석기 미술과 세계 신석기 미술의 관계를 밝히다
김찬곤의 연구 성과는 아주 치밀하고 놀랍다. 그는 우선 우리가 ‘자명하게’ 알고 있는 개념이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학계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이 사실은 어느 시기에 전도(뒤집힘)된 개념이거나 관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론사에서 늘 있는 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도가 일어났을 때 본래 그 기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는 점이다. 허신이 중국 한자를 ‘주역의 세계관’으로 정리했을 때 한자에 깃들어 있는 중국 신석기 세계관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듯이 말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신석기 미술은 ‘공백’이다. 그래서 그간 나온 한국미술사를 살펴보면 신석기 미술은 10페이지 남짓밖에 안 된다. 그것도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사진과 더불어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신석기 미술이 공백이듯 세계미술사에서도 신석기 미술은 공백이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신석기 미술을 아예 다루지도 않는다.
김찬곤은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한국미술사에서 공백인 신석기 미술을 풍성하게 채워내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까지도 정리하지 못한 ‘한국미술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한다. 더구나 그는 이 책에서 한국 신석기 미술뿐만 아니라 세계 신석기 미술을 아주 꼼꼼히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 서아시아와 동남·동북아시아, 남·북아메리카와 메소아메리카 신석기 미술까지 두루두루 사례를 들고 낱낱이 풀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미술사학에서 ‘기하학적 추상무늬’ ‘기하학적 패턴’이라 하면서 그 어떤 해석도 내놓지 못했던 신석기 미술을 말이다. 어쩌면 이 책 《빗살무늬토기의 비밀》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세계 신석기미술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