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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동시 에세이

작품론 - 찾기 전의 설렘을 곁에 두고

by 도서출판 상상의힘 2024. 10. 28.

1.왜 동시를 읽어야 하는가?

1.1 시가 내게로 왔다

2.동시란 무엇인가?

2.1 동시란 무엇인가? 좋은 동시란 무엇인가?

3.동시를 읽는 즐거움 - 작품과 작가

3.1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실제 – 방주현의 『내가 왔다』를 통해

3.2 작품 읽기

3.2.1 찾기 전의 설렘을 곁에 두고 - <보물 찾기>

4.교실에서 동시 읽기

 

 

 

찾기 전의 설렘을 곁에 두고

                                                                              수현

 

  요즘 딸아이가 좋아하는 포켓몬스터 카드를 사면 동영상으로 신나게 카드깡을 찍는다. 처음엔 “카드깡을 찍겠습니다!” 하길래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카드 껍질을 뜯으며 “뭐가 나올까요?”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아이들 세계의 카드깡은 한마디로 ‘카드 까기’였다. 처음에는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하는 흔치 않은 카드를 얻기 위해 카드팩을 대량으로 사서 뜯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딸아이는 게임도 안하면서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좋아해 카드를 모으는데,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카드를 뜯어보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별로인 캐릭터만 계속 나오면 엄청나게 실망을 한다. 그러면서도 굳이 엄마의 허락을 구해 돈을 주고 산 카드이기에 그런 건지 운이 없었다며 이 운은 다음에 쓸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말을 영상에 남겼다. 딸아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향해 다가갈 때 설렘과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을 영상으로 남기고 또 공유하고 싶어 한다. 온라인 영상물과 1인 방송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설렘이라는 감정을 곁에 붙잡아놓는 특별한 방법인 것일까? 문득 나에게도 설렘으로 가득 차서 발걸음이 스키핑이 되던 때가 떠오른다. 나뭇잎이 팔랑팔랑 나부끼며 떨어지는 가을이었고, 돗자리에 모여앉아 점심으로 싸 온 김밥을 먹는 소풍날이었다.

 

 보물 찾기

 

 팔랑팔랑

 은수원사시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껴요. 어디서 날려 왔는지 골짜기 가득 맛난 냄새가 떠돌아요.

 오늘은 소풍날. 점심도 먹었으니 곧 보물찾기를 하겠지요. 빨간 도장이 찍힌 여우 그림을 찾으면 공책이건 연필이건 탈 수 있는 보물찾기를 하겠지요.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요. 발밑의 가랑잎도 덩달아 부스럭거려요. 보물을 찾기 위해 모여 선 우리들은 눈을 접시같이 크게 뜨고 선생님을 지켜보아요. 공연히 마른침을 삼키며 호루라기 소리를 기다려요.

 보셔요. 벌써 호루라기 소리가 종다리처럼 등성이를 넘잖아요.

 

 두리번두리번

 모두들 알라딘이 되어 요술 램프를 찾아요. 바람은 장난꾸러기처럼 풀섶을 헤쳐 보며 깔깔거리고 약삭빠른 아이들의 환호성도 들려요. 풀이 꺽인 나는 새알이라도 꺼내려는 듯이 새 둥지도 내려 보고 사슴벌레라도 잡은 것처럼 바위틈에도 손을 넣어 보지만 늘 그렇듯이 오늘도 빈털터리지요.

 

 내게 보물은 그저 ‘찾기 전의 설렘’ 그것뿐인가 봐요.

                              <류선열, 『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2015>

 

 예나 지금이나 최고로 설레는 놀이 보물찾기.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기술 따위는 없지만, 운 좋게 3등이라도 걸리면 예쁜 포장지로 쌓인 소소한 선물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보물을 찾을 생각에 들뜬 마음, 곧 내 발은 부스럭거리며 두근대는 가랑잎을 넘어 보물을 찾으러 떠날 거다. 2연의 아이처럼 접시같이 눈을 크게 뜨고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 보물찾기를 시작하는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늘 요술램프가 손에 들어오는 알라딘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잘도 찾는 그 도장 찍힌 종이 한 장이 내 눈에는 띄지 않으니 얼마나 애가 타는지...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나둘씩 선생님 곁으로 모여드는데 난 하나도 찾지 못한 채, 서운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무리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시 속 화자는 이런 나보다 더하다. ‘늘 그렇듯 오늘도 빈털터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보물찾기를 할 때마다 있는 일인 것 같다. 보물을 늘 찾지 못하면서도 보물찾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래도 이번에는?’이라는 희망에 팔랑팔랑, 콩닥콩닥한 마음을 어쩌란 것인가.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쓸쓸해진 화자는 그래도 결국 보물을 찾고야 만다. 내게 보물은 그저 ‘찾기 전의 설렘’ 그것뿐인가 봐요. ‘그것뿐’이라는 말은 좀 씁쓸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우리 삶의 필연적인 모습인 것도 같다. 

  이 산문시 안에는 우리들의 것이기도 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떠오르는 장면과 아이의 행동과 표정까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이 서사에는 원하는 것을 향해 가는 조금씩 더 고조된 설렘이 있고,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어쩌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몸짓이 있다. 우리는 항상 보물을 찾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며 깨달은 것은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사건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찾고, 원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얻지 못하는 경험들이 쌓여서 어느새 우리는 보물을 찾을 욕심을 접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설렘’이라는 단어가 삶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 슬프다. 어쩌면 너무 설레었다가 실망할까봐 내 마음에 비루한 방어막을 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마지막 연의 ‘찾기 전의 설렘’이 보물이라는 말은 결과 후의 우리가 아니라 ‘찾기 전’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1연과 2연에 들어 있는 ‘팔랑팔랑, 콩닥콩닥’한 마음을 가진 우리 말이다. 설렘이란 준비하고 기대하는 마음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무한 동력이 되는 감정이다. 입학이나 입사와 같은 시작이 그렇고, 사랑의 시작도 그러하며, 여행을 떠남이나 기다리던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그렇다. 시작하는 설렘의 스키핑. 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절로 나오는 그 스키핑을 자주 본다. 그리고 그 스키핑의 걸음이 가진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딸의 모습을 보며 슬쩍 시선을 바꿔 나 자신의 마음이나 잘 지키자 싶어진다. 초등학생 딸은 이미 ‘오늘 가지지 못한 운은 다음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설렘의 순간을 지켜내고 있었으니까. 그 설렘의 마음을 영상이든 어디든 잘 담아놓고 잊혀질 만한 빈털터리의 순간이 왔을 때 꺼내 보자. 물론 그 마음이 영상이 아닌 내 마음에 언제나 담겨 있다면 훨씬 좋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