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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동시 에세이

늘 오하이오우!

by 도서출판 상상의힘 2024. 10. 28.

 

<동시 에세이>

1.왜 동시를 읽어야 하는가?

1.1 시가 내게로 왔다

2.동시란 무엇인가?

2.1 동시란 무엇인가? 좋은 동시란 무엇인가?

3.동시를 읽는 즐거움 - 작품과 작가

3.1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실제 – 방주현의 『내가 왔다』를 통해

3.2 작품 읽기

3.2.1 찾기 전의 설렘을 곁에 두고 - <보물 찾기>

3.2.2 늘 오하이오우!- <오하이오우>

4.교실에서 동시 읽기

 

늘, 오하이오우!

 

_윤희

 

가을이다. 서늘한 아침 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면 정오부터 눈부시게 환한 창밖의 하늘이 나를 부른다. 이 좋은 날, 네모난 교실에 앉아 네모난 컴퓨터를 보고 네모진 표정으로 부루퉁하게 앉아 있을 거냐고 바람이, 구름이, 하늘이 손짓한다. 그러나 교내 메신저를 확인해 보니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어쩔 수 없이 컴퓨터 배경화면에 가을 하늘을 띄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가만 보니 나의 오늘은 어제와 비슷했다. 나의 오늘들은 쌍둥이 얼굴을 한 어제와 그제였고, 내일의 오늘도 몹시 닮을 것 같다. 이럴 수가. 자각한 순간부터 무탈하게 지내온 일상이 심심하고 밋밋해졌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은 힘이 풀려 미끄러지고 나의 마음도 삐거덕거린다. 무표정한 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던 중 반가운 아이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몇 해 전에 만난 아이들이 찾아온단다. 요즘 안전을 위해 학교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각에 맞춰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손을 흔드는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작은 소란과 함께 맞이해준다. 오기로 한 인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아…. 오기 전에 아이들 이름을 한번 살펴보고 올 걸.’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몇 명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안한 표정을 얼른 지우고 훈훈한 성장에 못 알아보겠다는 너스레를 떨며 인사했다. 코로나 때 담임을 맡아 맨얼굴보다 마스크 쓴 모습이 더 익숙하고, 비대면 수업도 많아 다른 해에 만난 아이들보다 느슨한 인연이었는데 불안한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온 덕인지 끈끈함이 남달랐다. 내 키보다 작던 아이들이 불과 몇 년 사이 큰 사람이 되어 찾아오니 시간의 양감이 만져지는 듯하여 마음이 충만해졌다. 모인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 다른 반이라 연락하여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해를 기억하고 찾아온 아이들이 반갑고 기특하며, 고맙고 뭉클했다.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티는 몇 번의 홀짝거림으로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우리의 만남도 아이들의 바쁜 학원 일정으로 짧게 끝났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마주하며 깊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날의 만남은 만나기 전 설렘과 헤어진 후 아쉬움이 더 길었다. 선생님의 지갑 사정을 고려하여 제일 싼 복숭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헤어지기 전에 한번 안아 달라던 아이들. 이 소중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떠올랐다.

 

 

오늘은

늘 그렇고 그런

오늘이 아니야

 

오늘 하늘은

늘 그렇고 그런

하늘이 아닌

 

 

나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늘,

오하이오우!

 

너 보러 여기 오면서

 

늘,

오하이오우!

 

오늘 하늘처럼

이렇게 오래 우리가

 

- 이안, 「늘, 오하이오우!」 (전문)

 

이안 시인의 시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시 안에 숨겨 놓은 글자나 의미의 비밀을 짚어가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늘, 오하이오우!」도 그렇다. 이 시는 제목만 읽어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들뜨게 한다. ‘오하이오우!’는 느낌표까지 살려 노래하듯, 응원하듯 운율을 살려 읽으면 좋다. ‘오’는 감탄사로, ‘하이’는 hi 또는 high의 의미를 담아 반가운 마음을 담아 끝을 올리는 억양으로, ‘오우!’는 경쾌한 끝마침으로. ‘그렇고 그런/오늘’과 ‘그렇고 그런/하늘이 아닌’ 특별한 ‘오늘 하늘’은 ‘늘,/오하이오우!’를 외치며 늘어진 일상에 탄력을 주는 주문처럼 즐겁게 익히고, 소리내어 읽으면 아이들을 만난 그날의 가뿐한 발걸음이 떠올라 콧노래가 나온다.

 

이 시는 ‘오늘, 하늘, 늘, 우리’의 핵심 단어로 연마다 연결된다. 1연에서 시간 축의 한 점인 ‘오늘’은 2연의 ‘하늘’로 시선을 상향시키며 너른 공간으로 감각이 확장되어 시․공간감 안겨주고, 3연에서 ‘하’하고 잠시 쉬어 여유를 되찾은 후, ‘늘’로 연결되어 시간의 한 점인 오늘을 켜켜이 쌓아 시간의 축을 횡으로 늘린다. 또한 유한한 인간으로서 자연에 경외감을 느끼며 ‘하늘을 우러러’ 보는 시적 화자의 태도는 ‘늘’에서 ‘오늘’로 돌아와 현재성을 확인하고 일상의 감사함을 깨닫게 한다. ‘늘’은 단순히 ‘오늘’과 ‘하늘’의 공통 글자에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과 쉼의 ‘늘’이다. 이렇게 되찾은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은 ‘우리’의 기도를 담은 ‘늘’이 되어 ‘너’들과의 관계에 지속성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연의 ‘늘처럼/렇게 리가’는 시적 화자의 간절한 기도문이 되어 들린다. 또한 이 시가 수록된 『기뻐의 비밀』 대다수 시가 자연물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고 있기에 ‘우리’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오늘 하늘처럼/이렇게 오래 우리’로 만난 나의 아이들, 그들의 앞날이 평온하길 바라며 가만히 이름을 부른다. 가연이 현정이 유라 가윤이 휘찬이 범성이 양훈이 민재 지훈이 재하. ‘우리’의 ‘오늘’은 ‘늘’ 함께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늘, 오하이오우!